사람은 왜 이렇게 살아가는 걸까? 인생이란? 왜 결혼을 하고, 빚을 져가며 집을 사고, 카드값을 갚아가며,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살아가는 걸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데 왜 예수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아닌 불완전한 존재로 창조하셨을까? 태초에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같이 완전한 존재로 창조하셨으면 인류의 역사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었을 텐데... 이 광활한 우주에 인류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피조물일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어진 피조물로 모든 인류가 하나님 자신에게 영광하는 모습을 바라셨을까? 지구상에 인간은 몇초마다 한명씩 죽고, 태어나길 반복하는데, 그럼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2022년동안 몇 명일까? 그럼 그 인원을 수용할 천국의 크기는 얼마만할까? 그렇기에 우주 정도의 공간이 필요했을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의문으로 남아있던 중에 은혜의 동산은 이 모든 생각이 쓸데없는 생각이 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중학교 입학전 겨울 어느 날 동계수련회에 연례행사처럼 참석했던 그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처음으로 나를 만나주셨다.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한단다. 나는 너와 항상 함께 할거야” 라고 말해주셨다. 눈물 콧물 다 쏟고 “왜 나같은 놈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어요?”라며 반문하며 정말 작은 부분까지 잘못함을 화해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함으로 살던 날들을 시간이 지나자 차츰 식어갔고, 마음 한 켠에만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해주신다는 편리한 믿음으로 필요할 때만, 어려움에 직면할 때만 아버지를 부르며 이거, 저거 해주세요 식의 철없는 자식으로 살았다.
대학교 복학전 관심을 가지던 여동생의 권유로 네팔선교를 가게 되어 하나님께서 믿는자에게 얼마나 큰 복을 주시는지 또한 그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들을 위해, 선교를 위해 다시 기도하며 부르짖게 하셨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가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김해에서 연고도 없이 신혼을 시작했을 때에도 주위에 믿음좋은 이웃들로 하여금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며 타지에서 적응을 하며 살았지만 사회생활을 할때는 믿음의 스위치를 끄고, 주일날 교회에 가면 스위치를 켜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냥 다중인격적인 삶을 살아왔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고 서울로 이사를 와서 비대면 예배를 드릴 때는 더욱 편하게 믿음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거리두기가 끝나고 은혜의 동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음 속에선 부정적인 생각과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은혜의 동산을 수료해야만 어떤 멤버쉽을 얻는 같은 제도랄까? 와이프와의 다툼보다는 좋은 관계를 위해서 참석을 하기로 했지만 그 마저도 자존심이 상하는 마음이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위로가 필요했다. 와이프한테 져준게 이긴거야 하며 스스로 위안할 때 서두에 적어 놓은 의문들 보다 우선되는 질문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사울을 바울로 바꾸고, 항상 새벽기도 하시는 부모님들이 만난 하나님하고 틀린 하나님인 걸까? 왜 난 완벽하게 변화되지 못한걸까? 왜 난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는 걸까? 왜 하나님과의 관계가 싸인 곡선처럼 반복적인걸까? 자책을 하며 은혜의 동산을 멀리하고 싶었다. 딱 그때 섬김이께서 연락을 주셨다. 식사를 하자고 하셨고 부담스러운 관심을 주셨다. 하지만 그 관심은 진심이었고 사랑이었다. 중보의 힘 때문일까? 수양회를 통해 막혔던 기도가 터졌다. 하나님께서는 섬김이를 통해 항상 날 사랑하시고 계셨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구별된 삶을 살지 않아도, 세상 속에서 허덕여도, 내 마음대로 살아도 하나님은 날 사랑해 주셨다. 나만 못 느낀 것이다. 약함으로 인해 죄의식으로 인해 하나님을 멀리했을 뿐, 아버지께서는 나를 사랑해서 만드셨고, 사랑해서 사람을 만드셨다. 한 날 피조물이 하나님의 섭리를 알려고 하는게 거만하고 악한 생각이다. 하나님께서 재미로 사람을 만드셨다한들 피조물은 그 재미를 위해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만드셨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된다. 사랑하게 하셨음으로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애찬식을 하는데 사랑이 마음에 충만했다. 감사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섬김이를 붙잡고 눈물과 콧물을 흘렸다. 동생을 안고 친구를 안고 기도했다. 와잎를 안고 울고 또 울었다. 마음 껏 울었다. 부족하다고 자격 없다고 자책하고 벌레만도 못하다고 쓰레기라고 해도 사랑한다 하신다. 아버지께서는 그래도 사랑한다 하신다. 받은 만큼 흘려 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6기에 섬김이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덜컥 부담감이 들었다. 아직도 한없이 키워가야할 믿음인가 보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더욱 가까이 해야 겠다란 결단을 다시한다.